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비 아머드 (문단 편집) == 상세 == 1976년 8월 15일에 출생하였다. 초명은 아브요트(አብዮት, Abiyot)이다. 아머드 알리라는 부친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부친은 [[무슬림]], 모친은 정교회 신자이며, 본인은 [[개신교]]도이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별도의 성씨를 사용하지 않고 본명과 부칭(부계명)이 덧붙는 작명 방식을 사용한다. 따라서 본명이 아비(አብይ)이며 아머드 알리(አህመድ አሊ)는 그 자체로 부칭이다.] 또한 부인은 자신의 출신인 [[오로모인]]이 아닌 [[암하라인]]으로, 이러한 다종교, 다민족적 특성은 아비 아머드의 국가 통합적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다. 15살이 되던 해인 1991년 오로모 민주당에 입당,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2010년에 에티오피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2018년 2월에 오로모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 해 3월에 실시된 에티오피아 총선[* [[의회해산]]을 한 게 아니고 [[멜레스 제나위]]가 있던 기존 집권당 의원들이 의원직 총사퇴를 해서 벌어진 [[재보궐선거]]였다. 재보선에 걸린 의석수는 150여 석이었고, 오로모 민주당은 이 중 63석을 차지했다. 진짜 총선은 [[2020년]] 실시한다.]에서 승리하여 4월 3일 에티오피아 총리에 취임하였다. 아비 아머드는 독재자 [[멜레스 제나위]]의 잔재를 일소하였다. 그가 취임하기 이전의 에티오피아는 국민들에게 극도의 통제를 행하던 국가였다. 그러나 아비 아머드는 [[야당]] 운동가 수천 명을 석방시켰고, 접근 금지된 인터넷 사이트의 제한을 풀었다. 또한 추방된 반체제 인사들의 귀국을 허용하였다. 이로서 에티오피아의 언론 자유 지수(PFI)는 150위에서 110위(2019년)로 상승했다. 대외적으로도 아비 아머드는 업적을 남겼다. 당시 에티오피아가 처한 가장 큰 문제는 [[에리트레아]]와의 전쟁이었다. 에리트레아의 독립 자체는 이전부터 인정되었지만, 국경 확정 문제로 전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는 10만의 사망자를 낸 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두 나라 사이의 국경선을 확정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2018년 11월, 에티오피아는 공식적으로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완전 승인하였으며, 아비 총리는 2018년 12월 25일에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간의 국경선을 최종 확정하여 20년 넘게 이어진 [[에티오피아-에리트리아 전쟁]]을 완전히 종결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발생한 수백만 명의 [[난민]]들은 각자의 의사에 따라 에티오피아에 남을지, 에리트레아로 갈지 정하기로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